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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세요♥/암질병의학정보

[공황장애 극복 경험담.3 마지막 ... ] 공황장애 불안장애 신체형장애 약물중독 입원 그리고 퇴원 ♥

 [공황장애 극복 경험담 3 마지막 ...]

 

공황장애 불안장애 신체화장애

 

약물중독 입원 그리고 퇴원

 

 

 

 

 

 

 

 

 

 

 

 

앞서 공황장애 경험담 1.2 를 통해 말씀 드린것처럼 ...

 

경북대학교 병원 응급실에서 추천한 대구 대동병원 정신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

 

입원하자 마자 링거를 꽂고 고통으로 누워 있을때 ...

 

수간호사님으로  기억 합니다 . 머리를 감싸고 몸을 떨며 괴로워 하는 제게 따뜻한 표정으로

 

" 참 힘드시죠 ?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차차 좋아지실겁니다 " 라며

 

진심어린 격려부터 건네시더군요 ...

 

더욱 놀란 점은 저를 맡아 치료 하시기로 한 제 주치의께서 퇴근하시면서 제 병실에 들리셨습니다.

 

제 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 제가 극도로 불안해 한다는 걸 잘 아셨는지 ...

 

제 손에 쪽지인지 명함인지 쥐어 주셨습니다 ...

 

혹시 밤에 너무 힘들고 불안해서 견딜수 없을때면 전화 하세요 ...... 라는 말씀 ...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분들께서는 믿지 못하실수 도 있으시겠네요 ...

 

세상에 이런 의사 선생님도 계시다니 ...

 

 

 

 

몸은 많이 괴로웠지만 그래도 24시간 치료 받으며 기댈수 있는 병원에 입원 했다는 위로 ...

 

간호사님의 따뜻한 격려까지 ... 생각지도 못한 주치의 선생님의 배려까지 ...

 

고통도 컸지만 안도감으로 고통의 반은 줄어든것 같은 병원 첫날 밤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제 치료는 제가 중독 된 약물 성분과 비슷한 중독성이 없는 대체 약물을 투약 받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처음에는 한동안 링거를 통해 약물을 투여 받았습니다 ...

 

약물이 들어 올때는 떨리고 숨이 막힐 정도의 이루 말할수 없는 고통으로 힘들어 하던 제 몸이

 

조금 편해 지는것을 느꼈습니다 ... 완전히 편안한 상태까지는 아니었구요 ...

 

그러나 정말 견딜만 했던것으로 기억 합니다 ...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라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네요 ...

 

오전이면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와 치료를 받으며 생활을 합니다 ...

 

그렇게 한참이 지나니 ( 정확히 며칠이 지났었는지 죄송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

 

 

 

 

링거 대신 하루에 한 두번 정맥 주사로 치료 방법을 바꾸자고 하시더군요.

 

조금 힘들거지만 치료 과정이니 잘 이겨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

 

링거를 24시간 달고 있을때 보다

 

몸은 다시 힘들어져 갔습니다 ...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전제를 하나 주셨습니다 ...

 

정말 힘들고 버틸수 없을때만 간호사실에 가서 주사를 맞으라고 ... 기존 링거로 투여 받은 약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에 단 2번까지만 가능 하다고 하시더군요 ...

 

참고 참다가 간호사실로 달려 가는 저는 마치 마약을 찾는 사람처럼 설레여 있었습니다.

 

달려가 주사를 맞는 그 느낌은 과장을 조금 보태어 약물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온 몸이 편해지는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 온 몸의 고통과 긴장으로 움추렸던 몸이 긴 한숨과 함께 늘어지며 그 약물을 온 몸으로

 

느끼며 받아 드리고 있었습니다 ...

 

그때 저는 마약하는 사람들이 왜 약을 치료없이 끊을수 없는지 알것 같았으니까요 ...

 

 

 

 

그런 저는 언제가부터 제 몸의 고통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병실에 누워 혹은 휴계실에 쭈그려 온 몸을 떨어가며 시간을 자주 확인 합니다 ...

 

' 아 ... 이 정도 벼텼으니까 이제 간호사실로 뛰어 가도 되겠지 .... '

 

어느날 주치의 선생님께서 하루에 두번을 꼭 채우는데 힘들겠지만 줄여 보라고 하시더군요 ...

 

노력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

 

쉽게 잘 되지는 않았지만 노력은 엄청 했던것으로 기억 합니다 ...

 

도저히 참을수 없어 간호사실 앞에 갔다가도 ... 그 앞 벤치에서 1시간 정도 더 버티다가

 

주사를 부탁하곤 했으니까요 ...

 

물런 이 주사가 치료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

 

 

 

 

여러가지 검사와 상담도 이어졌습니다 ... 하루는 처음 뵙는 나이 지긋하고 인자하신 의사 선생님과

 

면담 했던것도 기억이 납니다 ... " 혹시 주치의께도 말할수 없는 고민이나 비밀등을 털어놔 보라 하시더군요 "

 

솔직히 어렸을 적 ... 친구따라 슈퍼마켓에서 초코렛 훔쳤던 일 ...

 

살아오면서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해 마음속 어딘가 남아 있었던 일 ...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깨닫은 ... 시간이 지나서야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미안함에 힘들었던 일 ... 등

 

고해성사 하듯  여러가지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

 

 

 

 

체계적인 상담과 치료 덕분인지 입원 한달이 지나가면서 제 몸은 조금씩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친절한 간호사님 놀라울 정도의 배려를 해주시는 주치의 선생님등 ...

 

따뜻한 의료진들의 모습에서 제가 제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 같습니다 ...

 

의료진을 믿고 신뢰하니 제 몸이 좋아질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떤 환우분들은 약을 처방 받으시면 인터넷을 찾아 본인께서 드시는 약이 어떤약인지

 

어떤 성분인지 너무나도 자세히 알고 계시는 모습에 놀란적도 있는데요 ...

 

저도 그런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왜 정신과라는 곳에 다녀야 하지 ?

 

몸이 아픈데 왜 자꾸 대화를 중요하 하지 ?

 

약을 며칠 아니 몇달 먹으면 낫는다고 말하지 않지 ?

 

그러다 건강염려증이 온적도 있었습니다 ...

 

하나를 의심하고 그 생각에만 빠져 혼자 답을 찾으려 하니 그 의심이

 

집착이 되고 스스로를 더욱 더 힘들게 하더군요 ...

 

 

 

 

어느 한곳이 아프면 내과 외과 등을 찾아 다니며 이 검사 저 검사 다 받아 봅니다 ...

 

그러다 또 아프면 얼마전에 했던 검사 결과나 의료진을 믿지 못하고 또 다른 병원이나

 

의료진을 찾아 다닙니다 ...

 

혈액검사부터 x-ray CT 내시경 등 19세때부터 대동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헤아리기도 힘드네요 ...

 

물런 특별한 병명이나 진단을 받지 못했지요 ...

 

그러던 제가 의료진을 신뢰하고 마음을 열자 몸이 회복되는것을 느꼈습니다 ...

 

물런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모든것을 해결해 준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제 경우에는 특별한 계기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집에서는 공황장애 불안장애 신체화장애등 정신과 치료를 받는것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 마음이 여려서 그렇지 ... "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이말

 

얼마나 수없이 들었는지 몰랐습니다 ...

 

 

 

 

정신과 말고는 치료해 주는 곳은 없고 아프다 하니 정신과 치료를 받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 주셨으나 앞에 말씀 드린것처럼 " 마음이 여러서 그런거야 ? " " 마음을 독하게 먹어봐 " 등

 

제 성격과 심성에 대한 문제로 인식하시며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도 지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지나온 아픈 시간을 다시 떠올리기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닐겁니다 ...

 

그래도 한 예를 들면 저 역시 살고자 아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고 싶어 독한 마음을 품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누워만 지내다 어느날 혼자 밖으로 나갔습니다 ...

 

이때는 응급실을 오가며 거의 방안에서 누워만 지낼때였습니다 ...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증상이 가장 심할때 였습니다 ... 물런 신체화장애도 있었구요 ...

 

늘 누군가의 부축이 없으면 걷기도 힘들었지만 어지럼증과 구토증상 말로 표현하기 힘들도록

 

무겁게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억지로 억누른채 ...

 

 

 

 

집에서 한발 한발 나가 보았습니다 ... 그러다 얼마 못가 주저 앉을것 같으면 얼른 뒤돌아 집에 오고

 

다음날 또 나가보고 또 나가보다 보니 ... 집 근처는 걸을수 있게 되더군요 ...

 

여기까지도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 했습니다 ...

 

그 다음은 정말 큰 마음을 먹고 버스를 타보기로 했습니다 ...

 

버스 정유장에서 버스를 보자 숨이 막혀 돌아 오기를 며칠 ... 그러다가 어느날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역시 한코스도 못가 숨이 막히며 공황발작이 오더군요 ...

 

다음 코스에 내려 지금의 아내인 제 여자친구에게 연락하여 저를 싣어가게 했습니다 ...

 

그래도 포기 안하고 또 시도 하고 또 시도하고 ... 그렇게 ... 버스 두 세 정거장까지 타 보았던 것

 

같습니다 ... 가만히 그때를 떠올려 보아도 세정거장 이상은 버티지 못한것 같습니다 ...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술에 의존을 하게 되었습니다 ...

 

술을 마시고 취하니까 공황발작이 오지 않더군요 ... 그래서 누구를 만나러 갈때나

 

특히 제가 너무나 좋아했던 축구 ... 그때는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참 뜨거울 때였습니다 ...

 

경기장에 갈때는 항상 맥주 몇캔을 미리 마시고 가방에 항상 맥주를 담아 다녔습니다 ...

 

그리고 중간 중간 맥주를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

 

그때 같이 축구 보던 사람들은 아마 저를 알콜 중독자는 아니더라도 술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할것입니다 ... 사실 틀린말도 아니지만요 ... 그때 당시 알콜의존증이라는

 

주치의 말을 듣기도 했으니까요 ...

 

축구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가끔 먼곳으로 원정경기를 단체로 보러 갑니다 ...

 

부산에 간적이 있었는데 ... 결국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쓰려져 많은이들을 놀라게 한적도

 

있구요 ... 축구동아리에 갔다가 쓰려져 급히 응급실에 가서 협신증이 의심 된다며 큰병원으로

 

옮겨져 모임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물한 기억이 나네요 ... 물런 옮겨진 큰 병원에서는 협심증이

 

아니라 공황장애라는 의료진의 설명에 한숨 돌리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그 표정과 분위기 ....

 

아무튼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다시 입원 생활로 돌아 가겠습니다 .

 

그 당시 저를 이해해 주지 않으시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집을 나오게 되었고 아내는 제 첫 아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제 병원비와 치료비를 위해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병 간호를 하고

 

그때는 고마운지 몰랐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참 나쁜 사람이었지요 ...

 

입원 생활이 하루 하루 지나가며 어느덧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 왔습니다.

 

그 당시까지도 제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서는 정신과에 입원 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정말 성실하고 선한분이신데 그 당시 3개월 동안 면회 한번 안 오신것은 아직도 가슴에 못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니 다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우리 아내를 데리고 산부인과에 출산을 위하여 입원 하였습니다.

 

 

 

 

아내가 산부인과에 입원하여 우리의 첫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니 ... 그 당시 무책임하게 살아오던 저도

 

여러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고민 후 간호사 선생님께 외출이 아닌 외박을 신청하니

 

주치의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 하루를 기다려 주치의 선생님을 뵙고 외박 요청을 드리니

 

쉽게 승락을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전 외출 때에도 아내가 있는 자취방에 있으며 몇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극심한 불안 증세와 공황발작이 일어날 것 같아 급하게 병원으로 돌아 온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치의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 드렸습니다. 제 아내의 곁을 지켜야 한다고 말입니다 ...

 

허락을 받고 바로 산부인과로 갔습니다. 예정일이 며칠이 지났는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오전 9 시 45 분으로 기억 합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 ... 수술실 앞에 앉아 초초하게 기다렸습니다 ... 1분이 1시간 아니 하루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때는 아이의 탄생보다 아내가 무사하게 수술받고 나오길 바랬습니다 ...

 

어느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인큐베이터를 밀고 나오는 간호사께서 저를 부르십니다.

 

" 축하드립니다 공주님이구요 아이의 팔찌 발지 확인 하세요 그리고 아내분은 수술 잘 마치셨습니다 ... "

 

인큐베이터 속에 제 아내와 똑같이 생긴 얼굴 쭈글한 새 새명을 보는 순간 ...

 

 

 

 

온 세상에 햇살이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태어나서 아니 지금까지 그 이상의 감격은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 ♥

 

얼마 뒤 아내를 면회하고 매일 하루 두번의 면회를 기다리기며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대동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퇴원하여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올때까지 저는 제가 공황장애 불안장애 신체화장애 환자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으며

 

아무런 증상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

 

집으로 돌아온 후 다시 병원으로 가서 집으로 가겠다고 말씀 드리고 퇴원 허락을 받았습니다 ...

 

그 후 저는 아직까지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지만 공황발작으로 응급실을 간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어떤 일에 몰두하다 밤을 새우거나 심한 과음 후 혹은 공복 때 운전을 하면 공황발작의 전조 증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오래 공황장애와 함께 살다 보니 공황장애 이 녀석을 달래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 그동안 터득한 나만의 노하우로 진정 시키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몸과 마음을

 

안정 시키고 컨디션을 회복하려 노력 합니다. 제가 100 % 완치 된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너무 감사합니다. 공황장애가 일어나던 1996 년 겨울 그 시작 ... 그리고 제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의

 

삶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 집니다. 약을 오래 복용하는 것을 두려워 하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하나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약을 복용하므로서 약으로 인해 몸이 나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할 분들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공황장애 환우들은 그 무엇 보다 정상정인 삶이 중요하니까요 ...

 

그럼 여기에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_______________________^

 

공황장애 불안장애 신체화장애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든 댓글 남겨 주시면 성심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땅의 모든 환우 여러분 힘내시고 쾌유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 ♡